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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5년 향로봉 탐사 트레킹 ; 56년 만에 강원도 고성 최북단 향로봉을 다녀오다. 2025-10-2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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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강원도 고성군에서 주관하는 백두대간 탐사트레킹 대회를 다녀왔다. 

트레킹 코스는 산림청 인도(군부대작전도로)를 이용하여 진부령 미술관에서 향로봉 정상까지 왕복 36km, 예상소요시간은 9시간이다.


군(軍) 복무 시절 향로봉 정산까지 갔다 온 후 56년 만에 다시 향로봉을 찾게 되어 옛 군 생활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강원도 인제에서의 나의 군 생활의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우선 향로봉탐사트레킹 참가기를 먼저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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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15분에 진부령 미술관 뒤쪽 초소에서 출발했다.


출발하기전  어저께 썬벨리에서 공연했던 국악창작그룹 자락이 참가자들의  트레킹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뜻에서 공연을 해 주었다.

이어 고성 군수님의 인사말씀 겸 격려사를 듣고 출발하였다.

출발하자마자 참가자 중 2/3가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빠른 걸음으로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 뒤로 나와 아내가 뒤따른다. 우리 뒤로 1/3가량 남아있다. 출발점인 진부령미술관에서 약 6km 정도는 경사가 조금 있다. 선두 그룹이 어찌나 빨리 올라가는지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 부부는 뒤에도 1/3정도 남이 있으니 좀 느긋하게 올라간다.


도중에 옆에 같이 보조를 맞혀 걸어가던 2023년도에 참가했던 분과 대화를 이어갔다. 그 분 말씀이 천천히 올라가도 된다고 한다. 완주하는 사람은 10%밖에 안 된다고 하며 모두 도중에 차를 타고 내려온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이 분이 뻥을 친다고 생각했다. 향로봉 트레킹 관련 후기를 여러 편 읽어보아도 차량을 타고 내려왔다는 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참가자 모두 걸어서 완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뒤에 1/3가량 남아 있어 느긋하게 걸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참가자와 헤어지고 우리 부부가 외롭게 올라가고 있는데 또 한사람이 우리 옆에 붙어 보조를 맞춘다. 정상 2.5km를 남기고 이정표가 있어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그 분이 사진 찍지 말고 빨리 올라가라고 채근한다. 뒤돌라보니 참가자가 아니고 행사요원이다. 그분 말씀이 우리가 제일 뒤고 이 속도로 걸으면 5시 전에 하산을 못해 행사를 끝낼 수 없어 군인들도 퇴근을 못한다며 빨리 올라가라고 한다.


그 후 우리 뒤에서 우리 부부를 추월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는데 향로봉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우리에게 뻥이 아닌 뻥을 쳤던 그 분의 얼굴도 보였다. 우리 뒤에 남은 1/3 가량의 인원은 차를 타고 올라온 모양이다. 나도 도중에 차를 타겠냐고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는데 타지 않겠다고 사양한 적이 있었다.


우리로 인해 행사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이때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상에 올라가니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이 7∼8명 줄을 서 있다. 적당한 시간에 잘 도착했다. 더 빨리 왔으면 사진 찍느라 길게 줄을 설 뻔했다. 기념사진을 찍고 계단을 올라 향로봉 정상을 밟아봤다. 여기서 금강산도 보인다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20∼30m도 안 되어 금강산은 커녕 아무것도 안 보인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 다행이 안개비라서 경치는 볼 수 없었지만 트레킹하는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풍경을 즐기면서 사진도 찍고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반면에 앞을 보고 걷기만 해 시간은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곳곳에 작전 중 산화하신 장병들의 추모비가 서 있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국군 장병들에게 잠시 묵념하고 그들의 넋을 기렸다.


점심식사는 고성군에서 김밥 두 줄과 바나나 한 개, 오이 두 개를 준비해 주어 올라가면서 한 개, 내려오면서 또 한 개를 먹으면서 시간을 절약했다. 이런 것을 등산 전문가들은 ‘이동식’이라고 한다.


향로봉 정상에서 오후 1시 조금 못되어 출발해서 하산 지점까지 내려오니 오후 4시 45이다. 총 8시간 30분이 걸린 샘이다. 행사 마감시간인 오후 5시전에 겨우 도착했다.


오늘 백두대간 트레일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은 안개비 때문에 전혀 감상할 수 없다.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어 거의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처음 올라갈 때 그 분 얘기가 뻥이 아닌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정상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헬기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내려올 때 우리를 추월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차를 타고 내려간가보다. 도착 지점 한 시간 여 남겨두고 앞에 열심히 혼자 내려가는 숙녀 한분을 보고 이젠 차를 태워준다고 해도 차를 탈 수 없다고 말을 건네자 그 숙녀분 왈! 이젠 자존심 때문에 차를 안타고 걸어서 완주하게다고 다부지게 말을 한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선물과 신용카드처럼 생긴‘2025년 백두대간 향로봉 탐사 트레킹 완주증’을 준다. 그리고 10,000원 짜리 지역 상품권도 준다. 고성군에서 이 행사를 위해 고생한 흔적이 엿보인다. 나는 김밥을 먹으면서 고성군 공무원들이 이 행사를 위해 정말 고생을 하고 애를 많이 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밥의 재료로 최고급 쌀로 만들어 정말 맛있었다. 물론 김밥 집에서 김밥을 만들겠지만 재료를 챙기고 미리 맛을 보는 것은 고성군 공무원의 몫인 것이다.


도중에 3곳이나 쉼터를 마련해놓고 생수병과 커피를 준비해 놓아 참가자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이동식 화장실 까지 설치해 놓아 참가자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준비해 놓았다.

 

하루 전날에는 식전 행사로 ‘국악창작그룹 자락’의 공연도 보여주었고 경품행사도 있었다. 물론 경품이 우리 부부에게는 하나도 안돌아왔다.


웃음을 잃지 않은 고성군 공무원과 행사요원들, 군인들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혹시 참가자들의 불편함은 없을까 일일이 챙기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특히 올라갈 때 우리 부부를 빨리 올라가라고 채근했던 그 분이 우리 부부가 도착했을 때 우리를 알아보고 오랜 지인을 만난 듯 얼마나 기뻐하는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아내보다 조금 먼저 도착했더니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사모님은 내려오셨냐고 끝까지 관심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보고 체력이 대단하다고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이번 행사의 참가자 중 우리부부가 최고령자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우리가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 2018년 북유럽 로드트립할 때 노르웨이의 트롤퉁가 트레킹을 한 적이 있는데 왕복 20km, 11시간이 걸렸다.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린 1시간을 빼면 10시간을 걸은 샘이다. 그 때만 해도 왕복 20km면 엄두도 못 낼 시기였는데 그 때 감히 도전하여 완주했을 때 그 쾌감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이번 향로봉 트레킹은 7년 전보다 나이도 더 먹었고 거리도 더 먼 왕복 36km를 8시간 30분 만에 완주했으니 대단하다고 스스로 칭찬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안개 속을 걸었던 2025년도 백두대간 향로봉 코스 트레킹이 너무 아쉽게 끝나 내년에 날씨가 좋으면 또 한 번 도전해 볼까 미련이 남는다.


이번 행사를 주관해 주신 고성군수님과 고성군 공무원 및 행사요원 그리고 장병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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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9년 5월, 논산 수용연대에 입대하여 군번(속칭 와리바시 군번)을 받은 후 논산훈련소 23연대에 배속되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전라북도 금마에서 후반기 박격포 교육을 4주 이수(履修)한 후 춘천 103보충대를 거쳐 양구 2사단보충대를 경유하여 인제에 있는 17연대 2대대 7중대로 자대배치(自隊配置)를 받았다.


내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7중대 2소대로 전입신고를 한 때가 청명한 가을 날씨로 오곡이 무르익는 추석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생생하다.

 

17연대는 6.25 사변 때,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부대로 유명하며 이에 대한 17연대 장병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내가 처음 이 부대에 전입했을 때는 덕산 교차로에서 인북천(당시 우리들은 소양강으로 불렀다)을 건너는 삐꺽거리는 붉은 나무다리가 하나 있었다. 이 다리의 이름이 리빙스톤교다. 지금은 덕산리 교차로에서 인북천을 건너는 다리가 2개 놓여 있는데 크고 넓은 콩크리트 다리 옆에 작은 다리가 또 하나 있다. 이 다리의 이름이 우리에게는 생소한 리빙스톤교다.


이 다리에 얽힌 슬픈 사연을 소개한다.

아래 내용은 2021. 10. 24자 강원도민일보 진교원 기자가 쓴 기사를 발췌한 것이다.


6.25전쟁이 한창 치열하게 지속되던 1951년, 중공군의 5월 총공세 속에 인제지구 전투에 참가한 미 제10군단 소속 리빙스턴 소위는 6월10일 인제 북방 2㎞지점에서 매복해 있던 적군에게 기습을 받아 덕산리까지 밀린다.

그의 부대는 작전상 후퇴를 위해 인북천을 건너려고 할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한데다 적군의 총탄세례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부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리빙스턴 소위도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후송돼 치료를 받던 중 야전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임종직전‘강에 다리가 놓여있었다면 많은 부하들이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과 함께 부인에게‘사재를 털어서라도 인북천에 다리를 놓아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리빙스턴 소위의 미망인은 6.25전쟁이 끝나자 한국을 방문해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다리 건설에 필요한 기금을 희사 했고, 지난 1957년 12월4일 리빙스턴 다리가 준공된다. 인제읍 덕산리~합강리를 잇는 길이 150m 폭 3.6m의 아이빔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목재난간으로 세워진 리빙스턴교(일명 빨간다리), 리빙스턴 소위의 희생과 자유수호를 기리는 상징물로서 오랜 기간 덕산리와 인제읍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해 왔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s://www.kado.net)]


이야기는 나의 신병시절로 되돌아간다.


7중대로 전입한지 며칠 되지 않아 향로봉 고지 탈환을 하러 간다고 한다. 내가 입대 했을 당시는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1968년 1월 21일) 직후였기 때문에 훈련이 엄청 심했다. 고참병 중에는 제대 특명을 받고 집으로 가다가 다시 부대로 복귀한 병사도 있었다. 완전 군장에 10km 구보도 했고 한계령 유격훈련장에서 유격훈령도 했고 광치령을 넘어 펀치볼까지 행군도 했었다.


그 당시 고참병들한테서 들은 유명한 말이 기억난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가로리’가 가로막혀 ‘원통’해서 죽겠네∼


지금은 서울에서 인제 원통까지 4차선 국도에 고속도로로도 접근이 가능한데 당시에는 왕복 2차선에 비포장도로도 많아 서울에서 면회라도 한 번 오려면 1박은 해야 될 그런 열악한 최전방 지역이었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가로리’가 가로막혀 ‘원통’해서 죽겠네∼”는 이런 최전방 지역에서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군인들의 애환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가로리는 인제군 남면에 있는 옛 군사지역인데 지금은 지역명이 사라진듯하다.


부대에서 향로봉 정산까지 어떤 루트로 갔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덕산리 부대에서 리빙스톤교를 건너 현재의 인제와 원통을 잇는 44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여 원통을 경유해서 간 것은 확실하다. 어둑어둑한 새벽,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데 어느 고참병이 원통을 지날 무렵 좁은 도로에서 ‘여긴 일방통행로’다 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만 해도 자본이나 기술이 딸려 도로를 잘 만들지 못한 것 같다. 암튼 완전 군장하고 새벽에 부대를 출발, 오후 늦은 시각에 향로봉 8부 능선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그 다음날 새벽에 동이 트자마자 소총을 들고 향로봉 정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향로봉 정상에 군 초소도 있고 돌로 만든 구조물들이 여럿 있지만 그 당시는 윙윙거리는 자가발전시설물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렇게 향로봉 정상에 왔던 것은 56년 전 일이다. 지금 이 자리에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서서 오래전 나의 35개월 동안의 군 생활을 뒤돌아보니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아쉬웠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향로봉에 와서 오늘도 나라를 지키는 젊은 군인들을 보니 나의 젊은 시절 군 생활이 결코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